<넘나쉬운 난민이야기>의 마지막 강의였던 '난민에서 아티스트로(Refugee to Artist).'
이번에는 감사하게도 두 사람의 참가자가 후기를 작성해 주었습니다.
안젤라님과 서빈님의 특별한 후기를 아래에 소개합니다 :) 


   




From Refugee to Artist by Miyah

It was serendipitous that I discovered EcoFemme’s fourth and last lecture of the 넘나쉬운난민이야기 series, which was held on November 8, 2018 at a cozy basement coffee shop near Chungmuro. I had just landed in Seoul from California, US, to begin my PhD dissertation field work on the construction of Korea’s refugee policy. I was casually browsing through EcoFemme’s Facebook page and found – to my delight – that I had arrived in Korea just in time to attend the organization’s last lecture that was to be presented by Miyah, a talented female Congolese artist and a refugee living in Korea.  

 

Miyah’s presentation began with a straightforward, yet thought-provoking question, “Who is a refugee?” The question probed the audience to ponder the portrayal of refugees and asylees in the public discourse, which generally, and many times falsely, entails images of people who are poor, uneducated, and needing sympathy. Contrary to these popular images, Miyah informed us that she has a college degree in marketing and had worked at the US Embassy back in Congo. For Miyah, the variety of societal misperceptions and biases against her is a product of intersecting factors including the facts that she is a woman and from Africa – a continent that is largely unknown to, or misunderstood by, many Koreans as deprived and homogenous.

 

In her calm and amiable demeanor, Miyah then cogently detailed the ways in which she had to involuntarily flee Congo to save her life; the legal, linguistic, cultural, and emotional hardships she endured upon her arrival in Korea; her first opportune meeting with EcoFemme’s director, Nabi, back in 2006; her subsequent growth as an EcoFemme artist over the past decade; and creating a new family in faraway Korea as she settled down with her husband (whom she met in Korea) and raised two beautiful boys.

 

Miyah’s story was empowering and inspirational. Her long and arduous journey from her home of birth in Congo to her second home in Korea, as well as her remarkable transformation from “refugee to artist,” made us question how we think about, or should think about, “refugees” as a legal and social category of people. What most impressed me, personally, was her earnest request for emotional support toward refugees and asylees. When confronted with a refugee, Miyah said, people often only think about providing material aid like food and money, but efforts that are as important but overlooked are making emotional and personal connections through mutual communication and respect. In concluding her presentation, Miyah urged Koreans to be more open-minded and make efforts to listen to the refugee voices. To refugees and asylum-seekers in Korea, she imparted a message of hope, saying, “낯선 땅에서 난민으로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기운 빠져있지 마세요. 뿌리와 문화에 자신감을 가지세요. 어려움을 극복할 있는 희망의 불빛이 어디선가 반짝이고 있을거예요.” “Never give up,” Miyah added, smiling.

 

During the Q and A session, Miyah shared deeper stories of social discrimination that she and her family experience on a daily basis because of the color of their skin, legal complications that arise during the refugee status determination process, the problem with her children’s (and other children of refugees in Korea) stateless status, and the different ways in which she expresses her emotions through art.

 

The two-hour meeting with Miyah at EcoFemme was such a valuable experience for me not just as an immigration scholar but as an Asian woman living in the United States. For example, when Miyah talked about her children – who are fluent in Korean and have a dual identity as Congolese growing up in Korea – I was reminded of my own childhood of growing up outside of Korea, carefully having to balance between my Korean and American identities, and living through all the ups and downs that accompanied the experience. I would like to thank EcoFemme for the amazing lecture series, and Miyah for sharing her stories with honesty and transparency.



에코팜므 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 4. 난민에서 아티스트로 by 미야(에코팜므) QnA 후기

숭례초 교사 서 빈

 

개인적인 일정으로 강연을 처음부터 제대로 듣지 못해 혹시나 내가 하는 질문이 이미 강의 내용에 포함되어 있을까 싶어 질의응답 시간에도 선뜻 질문을 하기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참가자분들의 질문과 그에 대한 미야의 대답을 듣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유익한 시간이었다. 그러다가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힘을 입어 나중에는 나도 몇 가지 질문을 드리기도 했다. 기억에 남는 질의응답들과 그에 대한 나의 몇가지 생각들을 정리해보았다.

 

l  체계가 부족한 난민 인정 절차와 지원 제도


미야는 우리에게 난민 인정을 받기까지 겪었던 수많은 우여곡절들과 그 결과 어떤 비자를 받게 되었고 어떤 정부차원의 지원들을 받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공무원으로서 일관성과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한 임무라고 생각되지만 (남에게는 그렇게 요구하면서) 모순적이게도 현재 대한민국의 난민 인정 절차는 참으로 원칙과 체계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난민을 신청하는 사람들마다 받는 처우도 제각각이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보들을 (직접 찾아 헤매며 문의하기 전에) 바르게 숙지하고 정식으로 안내하는 공무원이나 기관조차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실정이었다. 공무 수행 과정에서 요구할 수 있는 내용도 대상자가 처한 상황과 여건을 최대한 고려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오늘날 인권친화적인 관점에서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최소한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을 가능하게 만들라는 요구를 줄이는 것만이라도!)


그리고 미야의 힘들었던 일화들을 집중해 듣다 보니 에코팜므 대표님께서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서류들을 최대한 구체적이고 방대하게 구비하는 일은 그들을 돕는 변호사의 입장에서 선뜻 마음먹고 실천하기 곤란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신 것이 생각났다. 그 이유는 행여 그것이 선례가 되어 추후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준비하는 외국인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염려 때문이었다. ‘, 난민들을 가장 가까이에서 도우면서 느끼는 현장의 이야기와 그들을 행정적으로 관리하고 지원하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생각의 간극은 이렇게나 크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를 좁혀나가는 노력이 무엇보다 시급한 것 같다.


l  넘나 인간적인 난민 이야기


난민이기 이전에 인간인 그들이 겪었던 생생한 경험담은 인간적일 수 밖에 없다. 그렇지만 우리의 편견과 지레짐작이 더해져 그것들은 더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왔다. 대부분의 난민들이 그러하듯 미야 역시 다른 나라가 아닌 대한민국을 본인 의지에 의해 선택하여 살기로 결심한 것이 아니었다. 난민이 되기로 결심하기까지도 이미 충분히 혼란스럽고 긴박한 상황의 연속인데 난민으로 살아갈 장소까지 심사숙고할 여유가 그들에게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런 의미에서 원래 대한민국을 좋아했어요?’, ‘다른 나라 말고 대한민국에 살기로 결심한 이유는 뭐예요?’와 같은 질문은 우리가 흔히 외국인들을 만났을 때 기대감을 한껏 끌어올려 묻는 두유 노우 갱냄스타일?’처럼 그다지 영양가 있는 질문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에코팜므의 차기 대표이자 아티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미야는 원래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새로운 삶의 터전에서 고군분투하며 적응하는 사람들이 이전 삶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발전시켜나가는 경우는 참으로 드문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미야가 낯선 환경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 미술을 새로운 친구로 삼고 더 나아가 이를 나와 다른 사람들 그리고 비슷한 환경에 처한 사람들과 소통하는 도구로 활용하는 이야기가 더욱 진솔하고 와 닿았다. (미야의 삶과 에코팜므의 미래를 응원합니다!)


l  아이들은 언제나 아무 잘못이 없다.


초등교사인 나에게는 참 어쩔 수 없는 게 있다. 티를 안 내고 싶어도 결국에는 세상 모든 일을 교육과 결부 짓는 일종의 직업병 같은 것. 미야와 함께 대한민국에 살고있는 미야의 두 자녀들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나도 궁금했다. 감사하게도 질의 응답 시간에 아이들과 관련된 다양한 일화들을 공유해 주셨다. 그 중에서도 키즈폰을 사러간 휴대폰 대리점에서 한국 아이들이 아니라는 이유로 구매를 거부당한 일화와 국적을 기입해야 참가 신청이 수리되는 국기원에서 어렵게 승품심사에 응했던 일화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무국적 신분으로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참으로 사소한 일에서조차 거절당하는 기분을 일상처럼 느끼게 될 아이들에게 마음이 쓰였다.


그리고 다문화가정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안처럼 무국적자 아동들을 위한 지원 방안에 대한 연구 역시 활발히 이루어질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 의미에서 외국 출신 자녀들의 재학률이 높은 안산시에서 운영되고 있는 글로벌 청소년 센터의 활동 내용은 단비같은 소식이었다. 그리고 난민관련 NGO 협의체인 난민네트워크에서 진행하고 있는 #보편적출생신고 캠페인도 새로 알게 되어 추가로 관련 자료를 더 찾아보고 법안 발의 촉구에 서명하기도 했다. 무국적자 아동들은 인원 규모에 대한 통계 수치조차 제대로 집계되어 보고되지 않는 실정이다. 사각지대에 놓인 그들에게 더 많은 온정의 손길이 닿길 이와 관련된 이슈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져야겠다.


한 달에 걸쳐 평일에 한 번씩 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아서 스스로 목표로 삼았던 전 강의 출석은 실패하였지만 좋은 사람들과 강의 내용 덕분에 정말 따뜻하고 풍족한 한 달을 보낸 기분이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서 그래요.”라고 말하며 미소를 띠던 미야의 모습이 떠오른다. 혼자가 아니라서 배움을 좋아해서 살아갈 수 있었다는 미야의 깨달음은 인간이라는 직업을 가진 동업자들, 우리 모두에게 해당되는 메시지 아닐까! 에코팜므 감사해요! 덕분에 따뜻하게 연말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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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2018년이 거진 지나가고 있습니다. 시간이 참 빠르네요.

에코팜므의 연말파티 "Trip to AfroLand"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시간:

 

2018년 12월 18일 화요일 저녁 7시


장소:

 

희년평화필딩 지하 Cafe Vine 필동점 

서울 중구 퇴계로 36가 97, 충무로역에서 도보로 10분 거리


프로그램 내용:


* 올해의 <모자이크 아트스쿨> 작품 전시

* 아프리카 음악 공연
* 아프리카 시 낭송


참가비: 


무료. 

Google 설문을 통해 미리 RSVP 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문의사항이 있으시면 언제든지 이메일(ecofemme.info@gmail.com)로 연락 주시면 됩니다.

꼭 오셔서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자리를 빛내주세요. 감사합니다 :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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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통해 <넘나쉬운 난민이야기> 강의의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하고자 합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수강자의 관점을 소개하려고 해요~ 이에 고의성님의 글을 공유합니다 :)




에코팜므 3강: ‘난민, 우리의 용감한 이웃: 자원 문제와 난민’ 후기



고의성



1. 지인의 SNS 홍보를 통해서 에코팜므의 강의를 알게 되었고, 그동안 바쁜 삶을 핑계로 관심 갖지 못했던 난민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듣게 되었다. 지난 강의도 그랬고, 강의를 들을수록 마음 한켠이 더 무거워 지곤 했다. 내 주위에 보이지 않았을 뿐, 세상의 보이지 않는 곳에 아픈 이들과 아픈 모습들이 많음을 강의를 통해 간접적으로 보게 되었다. 지난 강의에는 개인의 관점에서 압둘 와합님의  이야기를 통해 아픈 현실을 들었다면, 이번 강의에서는 좀 더 관점을 확장하고, 자본주의 와도 얽혀 있는 상황에서 난민들의 현실을 알게 되었다.



2. 여러 가지의 이유들로 인해 갈등이 생기거나 분열이 일어났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 나라 안에서 끝이 날 수 있는 문제를 국제사회가 여러 가지 명목들을 가지고 일을 키웠고, 다들 명분을 가지고 있긴 했지만 결국 그 속을 들여보면 ‘자원’이 있었다. 돈이 있었고, 자기 나라의 이익을 위함이 있었다.  ‘생명’을 위한 것은 없었다.

너무 많은 아이들이 소년병으로 끌려가고, 7700만 명의 아이들이 노동착취를 당하고, 여자들, 약자들은 생명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너무도 비참하고 가슴 아픈 일들이 일어나게 되었다.



3. 국민 개개인이 잘못을 해서 일어난 일이 아닌, 개인이 어찌할 수 없는 큰 힘에 의해 갑작스레 그런 고통을 당하게 된 것이 얼마나 황당하고, 억울하고, 비참했을까.






4. 대표님이 ‘난민은 (    ) 다’ 라는 ppt를 띄워주셨다.  안에 들어갈 말이 무엇일까 이야기해보자 했다.

나는 말 그대로, refugee, 피난처가 필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기에 나는 피난처가 되어주어야 하고, 그들은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5. 대표님은 나의 그런 생각을 좀 더 관점을 확장 시켜 주셨다.  심플하게, ’그저 사람일 뿐’이라 하셨다.

똑같은 사람인데, 당분간 어려운 사람이라고. 그저 사회적 연대가 사라져 어려운 상황에 놓인 ‘사람’이라고.

그리고 대표님이 직접 난민과 함께한 삶의 이야기를 들려주시며 하셨던 말인데, ‘돕는 게 아니라 같이 사는 거’ 라는 말이 가슴에 박혔다. 친구가 되는 것. 내가 믿는 기독교에서도 하는 이야기와 같았다. 존귀한 ‘생명’으로써, 같이, 함께,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사는 것.



6. 아마 에코팜므가 아니었으면, 나는 난민들을 몰랐을 것이고, 그들을 향한 마음도 없었을 것이고, 그들과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생각조차 못 했을 것이다. 강의를 들을 수 있음에 감사했고, 나는 열심히 일하고 휴가를 모아서 내년 2월쯤에 친구들을 만나러 시리아로 가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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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 쉬운 난민이야기> 강의의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이에 4주간의 강의를 모두 듣는 김예영님의 후기를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



***** 김예영님의 1강 후기 먼저 읽기: ecofemme.or.kr/604 



10.18 제 2강 예멘 & 시리아 이야기 –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시리아 유학생)


에코팜므가 주관하는 두 번째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에서는 시리아의 난민들을 후원하는 시민단체인헬프시리아(Help Syria)” 대표 압둘 와합 씨와 함께했다. “시리아 난민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멘 난민 이슈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강의에서는 내전으로 인한 예멘과 시리아 난민들의 상황과 두 나라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배울 수 있었다.


이 날 강의도 충무로역 근처 한 빌딩 지하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되었다. 저번 강의와 다른 점은 책상이 사라졌다는 점이다! 편안한 분위기 속에, 따뜻한 음료를 마시며 시간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저번 1강은 우리나라의 난민들에 대한 상황을 육하원칙으로 간결하게 정리해 전달하는 강의였다면, 이번 2강은 예멘과 시리아라는 나라의 상황 속에 깊숙이 들어가보는 강의였다. 그러므로 더 많이 느끼고 생각할 계기를 가질 수 있길 기대하며 참석하였다. 아니나 다를까, 단순히 수치화 된 데이터들과 상황을 건조하게 서술하는 문장들로 배운 것과는 차원이 다른 현실을 볼 수 있었다.




 

아랍의 봄으로 정권을 교체에 성공한 예멘, 새로운 화약고가 되다. 


아직까지 중동의 국가들이라 하면 모두가 이슬람교를 믿고 같은 문화를 향유하며 같은 언어를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인접하여 자리한 대한민국, 일본, 중국이 판이하게 다른 것처럼 중동 국가들도 각기 다른 역사, 문화를 일궈왔다. 예멘은 중동 지역에서 2700만명의 인구를 가진 작은 아랍국가이다. 예멘은 남예멘, 북예멘으로 분단된 국가였다가 1990년에 통일이 된 나라라는 점에서 한반도와 비슷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예멘의 알리 압둘라 살레 대통령은 1978년부터 1992년까지 북예멘의 대통령으로 집권하였다. 그는 남북 통일 후 아랍의 봄의 바람이 예멘에도 불어오게 되면서 2011년에 하야하였다. 비록 이란의 개입으로 인해 무늬만 합법적인 정권 이양이었지만 민주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대통령이 세워진 것이다. 이때 까지는 민주화 시위가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고 평화롭게 진행되었고, 많은 나라들이 예멘의 경우를 이상적인 민주화의 예시로 간주했다. 하지만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후, 예멘은 사우디아라비아, 카타르, 아랍에미리트 등 주변 국가들과 정치적인 갈등을 겪게 되었다. 국제적 갈등 상황 속에서, 이란은 물러난 알리 압둘라 살레 전 대통령을 지지하기 시작했다. 이란과 예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시아파 무장세력인 '후티' 역시 전 대통령을 지지하며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에게 반격을 가한다.


군사적, 사회적 기반이 취약했던 하디 대통령은 결국 외국의 군사개입을 요청했고, 사우디아라비아가 주도하는 수니파 동맹군이 예멘의 상황에 개입하게 된다. , 한 국가의 민주주의에 대한 외침이, 수니-시아파 간의 중동 대리전으로 확산된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종파간의 갈등은 명목상의 이유일 뿐이었고, 사실상 이슬람 국가들 사이의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 위한 알력싸움이었다.


유니세프 통계에 의하면 전쟁으로 인해 예멘에서 발생한 난민의 수는 약 30만명이다. 국민의 80%가 고향을 잃었으며, 국민들 중 98%가 집을 떠나야 했다. 예멘은 나라가 넓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이므로 이동과 생활이 힘든 곳이다. 공습으로 인해 도로 시스템과 기반시설이 파괴되면서 예멘인의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발이 묶인 많은 사람들은 근처 산으로 피신해 하염없이 상황이 나아지길 기다린다. 예멘 난민의 상황은 국제기구의 활동만으로는 개선되기 쉽지 않을 정도로 심각하다.


 

올해 우리나라를 들썩이게 했던제주 예멘 난민 이슈


제주도에 도착한 484명의 예멘의 망명 신청자들이난민으로 인정된 경우는 없다. 신청자 중 대부분은 1년 동안만 한국에 머물고 체류할 수 있는인도적 체류자의 지위를 받았을 뿐이다. 즉 이들의 난민 인정률은 0%인 것이다.

예멘은 예멘보다 상황이 더 힘든 나라들로 둘러싸여 있기에 국경을 넘을 바에 예멘에 남는 것이 나을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거의 모든 나라들이 예멘 국민을 받지 않기 시작했기 때문에 예멘에서 비행기를 타는 것은 쉽지 않다. 말레이사아와 소말, 수단 이외에는 예멘에서 비행기로 갈 수 있는 곳이 없다. 그래서 많은 예멘 사람들이 말레이시아를 거쳐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것이며, 비행기를 타고 예멘 밖으로 나올 수 있는 난민들은 비교적 재정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이다.

실제로 와합 강사님이 만나셨던 제주도 예멘 분들 몇몇 분은 현지에서 부유하게 살다 내전으로 인해 제주도까지 오게 되었다고 한다. 현재 한국 사회에서 난민을 대하는 시선은 '추방vs환대'로 엄청나게 양극화되어 있다.




 

시리아그 찬란했던 과거와 참혹한 현재


시리아는 유프라테스 강과 티그리스 강이 지나고 있는, 최초의 문명이 발흥한 지역에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유적들이 있다. (한 기사에 의하면 2010년에만 해도 시리아 국내총생산 중 14%가 관광업에서 발생했다고 한다.) 시리아는 한국처럼 사계절이 뚜렷한 기후의 나라다. 도시화율이 상당히 높은 시리아는 아랍 국가 중 교육열이 제일 높으며, 교육 제도도 잘 갖춰져 있는 편이라고 한다. 여성들에게 히잡을 강요하지 않으며, 복장의 자유가 있으며, 많은 사람들이 현대적인 생활을 한다. 와합 강사님이 파워포인트 화면으로 시리아의 아름다운 바다의 절경과 도시를 보여줬을 때 감탄이 절로 나왔고, 몇 백년 간의 역사와 도시적 요소가 잘 어우러진 아주 멋스러운 나라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중동국가라 하면 낙타를 타고 다니는 사막을 상상하는데, 실제로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모습이다. (와합 강사님은 한번 친구를 놀리려 집마다 낙타가 한 마리씩 있고 주요 교통수단으로 타고 다닌다고 말했는데 그 친구가 정말 믿었다고 한다!).


시리아는 원래 다양한 종교와 민족이 갈등 없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평화로운 나라였다. 무슬림이 대다수이지만 기독교 인구도 10%나 되는 나라로, 다른 소수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많다. 여러 민족과 종교가 모자이크처럼 함께 공존하며 아름다운 시리아를 만들었다고 해 시리아는모자이크의 나라라고 불린기도 한다. 시리아의 수도인 다마스쿠스에 가면 골목마다 쟈스민 나무가 많아 그 향기로 인해 다마스쿠스를쟈스민의 도시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한다. 

시리아 혁명 이후 이러한 평화로운 상황은 180도 바뀌게 된다. 2011년 이후 종교간 갈등이 격화되었고, 현재 2300만명의 인구 중 절반 이상이 난민이다.


 

혁명에서 전쟁으로


시리아의 아사드 대통령은 2000년부터 현재까지 독재정치를 펼치고 있다. 시리아는 정부의 힘이 워낙 막강했기에 정치 활동가 및 외국인 전문가들은 시리아에서만큼은 절대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할 것이라 예측했다고 한다. 조금이라도 정부를 비판하거나 저항하면 가족의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1 3 15, 한 예상치 못한 일을 계기로 시민혁명이 시작되었다. 학생들이 학교 벽에 이집트 시위자들이 불렀던 노래 가사를 낙서했는데 군인들은 이들을 감금하여 고문하였다. 학생들의 부모들은 자식을 찾기 위해 경찰서에 갔으나아이가 죽었다고 생각하고 집에 가라”, “아이를 원하면 새로운 아이를 낳아라는 식의 무책임한 대답 밖에 들을 수 없었다고 한다. 이에 대중은 분노하였고, 40년이 넘도록 세습하며 시리아를 통치해온 아사드 정권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학생들의 납치 이후 2-3주 간의 인고의 노력 끝에 이들의 부모, 정치가 및 활동가들은 대통령과 마침내 조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사드 대통령은 고작 아이들 몇 명 때문에 그렇게 소란을 피우냐고 하며 아이들의 상황을 신경 쓰겠다는 말을 형식적으로나마 하지 않다. 경찰은 자신의 이종사촌이고, 자신은 이모를 감당하지 못하니까 경찰들과 알아서 상황을 해결하라며 이들을 돌려보내려 했다. “대통령의 이모가 화날 까봐 우리 아들이 죽어도 된다는 것인가?” 이 사건은 생방송으로 중개되어 온 국민이 볼 수 있었는데, 이 나라의 대통령에겐 희망이 없음을 모두가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다. 첫 시위는 대통령의 축출이 아닌 부패 척결을 외쳤으나, 이 사건 이후에는 민주주의와 평화, 대통령의 탄핵을 외치는 시위가 되었다. 7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시민들과 정부간의 갈등이 지속되고 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한 전쟁일까


아사드 대통령은 공식적인 발표를 할 때마다 “more killing”, 즉 더 많은 시민이 죽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정권을 포기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시리아에서는 학살이 일상처럼 자행되고 있고, 정부는 국민의 공포를 유발하기 위해 강간 및 학살 영상을 찍고 업로드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이는 국민을 두렵게 하기는커녕 그들의 분노를 더 불태웠다. 국민들은 죽더라도 무조건 시위를 나가야 한다고 결단했고, 그 해 7월에는 100만명의 시리아 국민들이 각지에서 일어나 시위에 참여했다. 이렇게 시리아는 두 덩어리로 분열되어 혼란의 도가니 속으로 빠지게 되었다. 이는 다른 나라의 개입이 시작되면서 악화되었다. 예멘에서도 그랬듯 이란은 시리아의 상황에 개입하였다.


시아파의 구심점이라 할 수 있는 이란은 예멘에서는 시아파인 반군을 지지하지만, 시리아에서는 시아파인 정부군을 지지한다 (시리아는 수니파 90%, 시아파 10%의 나라이자만 권력을 잡고 있는 이들은 시아파이다). 시아파인 현 대통령이 탄핵되고 대통령으로 수니파 세력이 집권하게 되면 이란의 입장에서는 중요한 동맹국을 잃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시리아의 내전에 개입하게 된 것이다. 또한 미국의 동맹국인 타 아랍 국가들과는 달리 시리아는 러시아의 동맹국이고, 이란과 유사한 이유로 러시아 또한 시리아에 무기를 무제한으로 지급하며 시리아 정부군을 지지하게 된다. 대표적 수니 세력인 사우디아라비아는 반대로 반정부군을 지원하기 시작한다.


미국은 조금 더 복잡한 입장을 보인다고 한다. 표면적으로는 시리아의 시위자들을 지지하지만, 실제로 이스라엘을 적으로 생각하는 반정부군이 권력을 잡게 되면 반이스라엘 입장을 보일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시리아의 석유보다 이스라엘의 안전이 더 중요한 미국은 표면적으로는 아사드 정부를 반대하지만 테이블 밑에서는 아사드가 이스라엘의 안전을 지키도록 하며 상반된 입장을 보인다고 한다. 이러한 혼란 속에 수니파 무장세력 ISIS등 테러단체들이 우후죽순 생겨났고, 이들이 시리아 내전에 개입하면서 상황은 더 악화되었다. 예멘과 마찬가지로, 민주화를 향한 바람이 중동의 대리전으로 변질된 것이다.


시리아의 난민들


현재 시리아는 7년간의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다. 탈출하지 못한 이들은 폭격 속에 살아가고 있으며, 기아에 시달리고 있다. 유엔난민기구가 시리아 정부와 협상해 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지만 역부족이고, 시민들이 굶어 죽지 않기 위해 국경 밖으로 나오려 하지만 이는 사실상 어렵다. 2011년 이후에는 대부분의 나라가 시리아인의 입국을 금지했으며 주변 국가들마저 2013년 이들에게 국경을 닫았기 때문이다. 시리아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들은 실향민으로 난민캠프에서 삶을 이어나가고 있다. 현재 시리아 난민은 700만명으로, 시리아를 탈출해도 매우 열악한 상황에 살고 있다고 한다. 와합 강사님이 보여준 사진들 중, 난민캠프에서 아이들을 보고 반가워서 카메라로 찍으려 하자, 카메라가 총 인줄 알고 두 손을 번쩍 들며 울상을 짓는 한 아이의 사진이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배를 타는 등 위험천만한 방법으로 지중해를 넘어 유럽으로 가려는 난민들도 정말 많은데, 현재까지 시리아난민들 중 대략 6500명이 바다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강의를 듣는 우리 모두가 던져야 할 질문이다. 와합 강사님은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어렵고도 쉽다'고 했다. 복잡하고 암울한 국제 관계를 생각하면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가 참 어렵지만, 그래도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쉽다고 말한 것일 테다.


압둘 와합 강사님은 한국으로 유학을 와 지인들과 함께 시리아의 상황을 알리고 돕기 위해헬프시리아(Help Syria)”라는 작은 시민단체를 만들었다. 한국에서 후원금을 마련하여 터키를 통해 시리아 안으로 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 후원금을 전달하고 다큐멘터리를 찍기 위해 시리아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공습으로 인해 폐허가 된 지역의 한 무너져 내리는 집에서 사람이 나와 놀랬다고 한다. 왜 난민 캠프가 아닌 이곳에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원래 직업이 기술자였던 그 분은 자신의 직업과 가족들을 차례대로 소개한 후, "나의 인격과 가족, 역사가 모두 이곳에 있는 데 난민캠프로 한 걸음만 걸어 들어가면 그 많은 난민들 중 한 명의 숫자로 전락해버리기 때문에 가지 않는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분은삶은 지속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계속해서 살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다시 집을 지어 가족과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관심은 행동과 함께 와야 합니다눈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압둘 와합 강사님은 가슴 아파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정말로 관심이 있다면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작은 행동으로 실천할 것을 부탁하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특히 시리아의 내전이 장기화되면서 이 상황에 사람들이 익숙해지기 시작했고 예전만큼 구호 물자와 지원이 들어오지 않는 현실이라고 한다. 따라서 교육이나 의료 지원은커녕 음식을 전달하는 것조차 힘든 곳들도 있다고 한다.


강의 내내 와합 강사님은 '난민', '전쟁', '비극', '참상'이라는 이름으로 가려진, 많은 나라들의 문화와 맨 얼굴을 잘 볼 수 없는 현실을 안타까워하며 언젠가 쟈스민 향기가 날리는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 사람들이 와서 사진을 찍고, 음식을 먹으며 시리아의 문화를 배우는 미래를 상상한다고 했다. 피피티를 통해 보여준 예멘과 시리아의 음식, 문화, 및 아름다운 풍경을 언젠가 직접 볼 수 있기를 바란다며, “꼭 방문해달라고 당부하면서 강의를 끝맺었다.


시리아 정부군은 2013년부터 자국민에게 화학무기까지 사용하기 시작했고,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7년간 지속된 내전에 따른 사망자수는 약 36만명이며 이 가운데 3분의 1인은 민간인이라고 한다. 그리고 시리아를 떠난 난민의 수가 작년에 500만명을 돌파했다. 강의를 들으며,  국가들의 정치 싸움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 소중한 목숨을 잃고, 삶의 터전을 떠나야 하는 상황이 정말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비인간성이 기괴하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각 나라들이 좀 더 난민과 고통받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 미국의 신학가이자 국제정치사상가인 라인홀트 니버는 '도덕적 인간은 있지만 사회는 비도덕적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윤리와 도덕이 개인과 집단에게 동일하게 적용되지는 않더라도, 나는 개개인이 양심과 도덕으로 집단에 저항할 때 변화와 균열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사회적 도덕을 탄생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개인들 간의 연대가 필수적이라는 점이다. 이방인에 대한 배타성이 가장 강한 나라 중 하나인 우리나라에서, 각자의 자리에서 그런 목소리를 내는 개인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나라로 망명을 신청한 이들을 한 추상적인 집단으로 보지 않고 이들 개개인의 이야기에 귀를 더욱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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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나 쉬운 난민이야기> 강의의 현장감을 좀 더 생생하게 전달드리고자 합니다.

이에 4주간의 강의를 모두 듣는 김예영님의 후기를 여러분께 공유합니다. :)




10.11 제 1강 “난민은 누구인가요?” – 이유민 강사님


10 11일 목요일, 우리나라 여성난민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 기업이자 NGO 단체인 '에코팜므'에서 4주간 진행하는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의 첫 강의가 시작되었다. 나는 평소에도 세계의 이주 및 난민 이슈, 특히 우리나라의 난민 이슈에 대해 관심이 많았기에 강의 공고를 보자 바로 신청을 했다.


장소는 충무로역 근처 한 빌딩 지하. 따뜻하고 포근한 분위기 속에 소규모로 진행되는 강의였다.


이 날은 에코팜므에서 스텝으로 일하는 난민 활동가 이유민님이 "난민은 누구일까요?" 라는 주제로 강의를 했다. 올해 제주도 예멘 이슈 이후 난민의 존재가 알려지긴 했지만 누가 난민이고 왜 우리나라에 오게 되었는지 등, 실제 난민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제대로 제공되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정말 필요하고 유익한 강의가 될 것 같았다. 이유민 강사님은 육하원칙에 따라 우리나라의 난민에 대해 개괄적이고 간결하게 설명해주었다.




 

When?


우리나라에 난민이 언제부터 들어오게 되었을까? 아주 간단한 타임라인으로 정리해 볼 수 있다.


- 1951년에 세계에서 최초로 난민 협약이 만들어진다.

- 1994년에 우리나라에 최초로 난민 신청이 들어온다 (5).

- 2001년에 우리나라에 최초 난민 인정자가 생긴다(1).

- 2004년부터 난민 신청자 수가 3자릿수가 된다.

- 2011년부터 난민 신청자 수가 1000명이 넘어간다.

- 2013년에 아시아 최초 난민 법을 제정한다. 출입국사무소가 난민을 관리하는 타 시스템과는 달리 난민만을 다루는 법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법과 현실의 괴리가 크다.

- 2018 5월에 500명의 예멘 난민이 한꺼번에 제주도로 들어왔다. 이렇게 다수가 한꺼번에 온 것은 처음이라, 그리고 제주로 온 것이라 국내의 난민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게 되었다.


 

Where? 


유엔 산하 난민 이슈를 중점적으로 다루는 유엔난민기구(UNHCR)에 의하면, 전 세계 국가들 중 가장 많이 난민을 배출하는 세 나라는 남수단, 아프카니스탄, 시리아이다. 그 이외에도 난민들은 중동국가에 한정되지 않은, 아프리카와 아시아에서도 많이 발생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UNHCR의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는 6850만명의 강제 이주자가 있고, 이중 4000만명이 국내실향민이고 2540만명이 자신의 국가의 국경을 넘은난민이라고 한다.

 


What?


그렇다면 난민으로 인정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난민협약(Convention Relating to the Status of Refugees)에 따르면, 난민이란 "인종, 종교, 국적, 특정의 사회집단의 구성원인 것 또는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박해를 받을 우려가 있는 위험을 갖기 때문에 국적국 외에 있는 자로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을 수 없는 자 또는 그러한 공포를 갖기 때문에 그 국적국의 보호를 받는 것을 바라지 않는 자"이다.


, 난민에는 '국적국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자 또는 보호를 원하지 않는 자 모두'가 포함되며, '합리적 근거가 있는 공포' 또한 난민 신청 사유가 된다. 그리고 '국적국 외에 있는 자'여야 하기 때문에, 국적국 내에서는 신청할 수 없다 (국적국 내에 있다면 국내실향민이다). 국경이 통제되는 나라들의 경우 위조된 여권을 가지고 탈출하기도 하는데, 이는 출입국 심사에서 또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고 한다.


'특정 사회집단 구성원이'라 함은, 여성(성별), 성소수자, 등 사회에서 구별되는 특징을 지닌 집단을 모두 일컫는다. 그리고 내가 알기로는 난민협약이 체결될 시점는 전쟁으로 인한 난민이나 기후변화로 인한 난민(전쟁 난민, 기후 난민)에 대한 조항은 없었지만 이후에 그 필요성이 대두되어 이러한 경우도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도록 바뀌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정치적 견해, 종교, 그리고 기타로 분류되는 내전, 전쟁 등으로 인한 난민들이 가장 많이 찾았다.


이유민 강사님은 이렇게 난민협약 아래 난민의 정의를 짚은 뒤 흔히들 헷갈려 하는 난민의 여러 가지 법적 형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난민 신청자: 모든 난민들은 난민 신청자로 시작한다 (이들은 asylum seekers, 즉 망명 신청자이다).


-난민 인정자: 신청이 인정되면 난민이라는 지위를 얻게 되고, 이에 따른 국가의 혜택을 받게 된다. 그리고 내가 수업에서 배우기로는 난민 인정을 받는 데는 두 가지 통로가 있다. 1951년 협약과 1967년 의정서에 가입한 국가를 직접 통하거나, 유엔난민기구(UNHCR)를 통하는 두 방법이 있는데 대체적으로 국가들은 난민 인정이 박한 편이므로 현재 인정된 2540만명의 난민들 중 80%가 유엔난민기구에 의해 인정된 이들이라고 한다. 이렇게 유엔난민기구의 정의 하에 난민으로 인정된 이들은 유엔이 제공하는 난민 캠프로 이동해 생활하게 된다.


-인도적 체류자: 이들은 한 국가에 난민 신청을 하였으나 신청이 거부된 자들로, 대신 "인도적 체류자"라는 새로운 명칭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들은 난민 신청을 한 국가에 대략 1-2년 정도 체류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진다. 정식 난민 인정자에 비하면 누릴 수 있는 혜택이 턱없이 부족하다. 특히 전쟁이나 내전으로 인해 난민을 신청한 이들이 대체로 인도적 체류자의 지위를 받는다고 한다


-재정착 희망난민: 이들은 난민불인정 결정에 대한 행정 심판 또는 행정소송이 진행 중인 이들이다.


 

How?


이들은 어떻게 이동해서 한국으로 오는가? 난민이라고 하면 가난할 거라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많은 난민들이 인천 공항을 통해 들어온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교육 수준이 높은 지식인이거나 어느 정도 사회적, 경제적 형편이 되는 사람들이다. 정말로 가난한 이들은 자신의 국적국에서 나오는 것 조차 하지 못한다고 한다.) 배를 타고 오는 경우도 물론 있다. 재정착희망난민으로 UNHCR(유엔난민기구)의 난민 캠프에서 오는 이들도 있다.


우리나라는 타국과 외교관계가 꽤 잘 되어있기 때문에 대부분에 국가에는 대한민국 대사관이나 영사관이 있다. 난민들은 대개 급박한 상황에서 오는 경우가 많은데, 자국의 대한민국 대사관에 가서 30일 또는 90일 등 단기 비자를 받아 한국으로 오는 경우가 많다.


올해 제주도의 예멘 난민 이슈의 경우, 비자가 없어도 입국이 가능했기에 좀 다르다. 예멘 내전을 피해 온 이들은 난민들을 받아주기엔 인프라가 부족하고 임시 비자만 허용되었던 말레이시아에서 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는데 (1951 난민협약 비가입국인 말레이시아는 예멘 난민들에게 국경의 문을 닫지 않은 몇 안 되는 국가들 중 하나이다), 말레이시아에 머물다 제주도는 비자 없이도 갈 수 있다고 하자 제주도로 이동한 것이다.


 

Why?


앞서 보다시피 난민 인정 사유는 다양하고, 정말 다양한 이유로 난민들이 한국을 찾는다. 이유민 강사님은 실제 사례를 몇 가지 들어 설명해주었는데, 여성 할례를 피해 한국으로 도망 와 난민인정을 받은 분, 자국의 언론인으로서 정부의 부정부패를 고발하다 감옥에 가게 되고, 탈옥 후 한국에 오게 된 분, 종교의 탄압으로부터 도망쳐온 분, 오랜 정치활동을 하다 안전에 위협을 느껴 오게 된 분 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여담으로, 우리나라에서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며 프랑스, 캐나다 등에 난민 신청을 해 인정받은 경우도 꽤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난민 현황은 어떨까?


우리 나라는 난민협약 가입국이다. 따라서 우리 정부는 난민 신청자에 대한 보호를 선택에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닌, 국제사회와의 약속으로서 필수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난민으로 인정된 사람은 1000명을 넘지 못하며, 난민 인정률은 난민신청자에 비하면 턱없이 턱없이 낮다. 난민인권센터의 행정정보공개창구에 의하면 난민 신청자가 크게 늘면서 인도적 체류자로 인정된 자들은 많아졌으나 난민 인정률은 2017 1.51%에 그치며(9,942건의 신청 중 121), 1994년부터 2017년까지 접수된 누적 난민 신청은 총 32,733건이라고 한다.


그리고 유엔난민기구의 통계에 의하면, 2000-2017년 사이 난민 인정률의 OECD 평균이 약 30%인데, 우리나라는 3.5%이다. OECD 평균의 약 1/10 정도 인 것이다. 난민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여러 나라가 받아들이고 있으나, 우리나라나 일본은 난민들에게 가장 박한 나라들 중 하나이다.


난민에 대한 입장은 극명하게 두 가지로 갈린다.

난민을 환대하자는 입장과 난민을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입장인데, 우리나라 제주도에 예멘 난민들이 들어왔을 때 이들이 무사증을 악용한다며 시위했던 사람들은 후자에 속할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이유민 강사님은 예멘에 대해 무사증은 폐지되었으나 이는 난민들이 무사증을 남용해서가 아니라 난민정책을 제대로 운영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기 때문임을 짚어주었다.)

 

난민들을 수용하지 않는 나라들 내에서는 일종의 반발로 난민들을 환영하는 캠페인도 활성화되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에코팜므를 비롯한 각종 NGO단체들이 주도하여 난민 영화제, 문화제등을 개최해 난민들의 문화와 삶을 알리고 있다.


 

“그리고 사실, 난민은 ...”


이유민 강사님은 첫 시작에 "난민" 하면 생각나는 것이 무엇이냐고 질문했다. 그리고 강의가 끝날 즈음에 난민 출신으로 세계적으로 유명해진 이들의 사진들을 보여주시면서 다시 질문을 던졌다. “난민, 하면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 있나요?”

빅토르 위고는 나폴레옹 3세의 폭정에 항거하다 추방된 난민이었다. 음악가 쇼팽 또한 바르샤바 혁명의 실패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했던 난민이며, 아인슈타인은 히틀러의 유대인 박해를 피해 미국으로 간 난민이었다. 그리고 스티브 잡스도 시리아 난민의 아들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국내 정세의 변화 또는 박해로 인해 잠시 동안 삶이 어려워졌을 뿐이지, 사실 난민은 불쌍하거나 불온한 존재가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다.


간결하고 유익했던 강의에 이어 활발한 Q&A 세션이 진행이 되었다. 나는 가짜뉴스가 난무하고 난민 혐오가 판을 치는 사회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을지에 대한 질문을 했는데, 그 문제가 난민 활동가들에게도 큰 딜레마라고 했다. 혐오 대응팀을 꾸려 가짜뉴스를 분별해 내고, 팩트 체크를 하고, 모니터링 등을 하는 한편, 난민들도 우리와 같은 사람임을 알리는 캠페인과 활동을 하신다고 한다.


우리가 느끼는 불안은 대부분 낯섦이나 무지에서 온다는 말이 참 공감됐다. 특히 우리나라처럼 자칭 "단일민족"이라고 하는 경우엔 더욱 외국인이 낯설게 느껴질 것이다 (우리나라는 당연히 단일민족이 아니지만, 그러한 단일민족 신화의 힘은 아직 너무나도 강력한 것 같다). 하지만 어떠한 태도를 취하기 전에 사실관계를 파악하는 것 (단편적인 사실이 아닌 역사적, 문화적 맥락을 이해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자신의 입장을 정하기 전에 적어도 실제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상황을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지 않을까. 그런 의미에서 가짜뉴스가 줄어들고, 사실과 거짓을 분별해 낼 수 있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강사님께서 예시로 들어주신 것은 이슬람 문화권의 조혼에 관한 것이었다. 난민들을 받아들이면 조혼 풍습이 우리나라에도 들어올 것 마냥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이는 내전이 너무 오래 진행되자 어린 딸들이 위험에 처하지 않도록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주기 위해 조혼을 시키는 문화가 생겨난 맥락을 전혀 알지 못하고 하는 말이다. 조혼은 전쟁이라는 특수한 상황 속에 생겨난 풍습인 것이다. 이것이 옳다는 것이 아니라, 뭐든 간에 맥락을 고려해야 한다는 말이 정말 와 닿았다. (실제로 조혼 풍습은 의도와는 다르게 많은 문제들을 낳은 것은 맞다).


또한, 제주도의 예멘 청년들이 일을 시켰더니 일할 의지가 없고 일을 못한다는 이야기도 돌았었다. 하지만 이들의 상황을 제대로, 인격적으로 고려하면 그런 말이 나올 수 있을까? 이들은 대부분 예멘에 있을 때 농업, 어업, 등과는 무관한 일에 종사했고, 이들 중 반체제 언론인, 교수 등 지식인도 존재한다고 한다. 제주도 특성 상 감귤 따기, 어업, 양식업 등 업종의 선택범위가 매우 한정된 상황에서, 조국의 가족과 집을 떠나 전혀 생소한 나라에서 전혀 생소한 언어로 전혀 생소한 일을 하는 것은 그 누구에게나 힘든 일일 것이다. (물론 실제로 게으름을 피웠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이러한 상황에서 직업교육도 제대로 받지 않고 일을 척척 잘 해내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싶었다.)


이날 논의된 또 다른 이슈는 제도와 수혜의 간극에 관한 것이었다. 실제로 난민으로 인정되었다고 해도, 전체적으로 난민 법에 대한 무지로 인해 (애초에 난민으로 인정되는 수가 극소수이기 때문에 심지어 공무원들도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한다) 본인이 스스로 난민의 권리를 찾아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 개인의 정보력에 의지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스스로의 권리에 대해 자세히 알지 못해 불이익을 받거나 부당한 대우를 받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예를 들어, 난민 신청자의 경우 난민 신청 후 6개월이 지나면 구직을 할 수 있는 허가증이 발급 가능하지만 공무원의 무지에 따라 거절되기도 한다. “난민이면 안 된다.”라는 답변이 돌아오는 것이다. 협약상 권리가 보장이 되어도 실제 실무자들이 거절하면 혜택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 참 마음이 아팠다


아이들의 경우, 유엔아동인권협약이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영향력이 있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 가든 부모의 체류자격과는 무관하게 그 나라의 의무교육은 무조건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중학교까지가 의무교육인데,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 입학은 온라인 상 아이디가 필요하다. 하지만 많은 난민의 자녀들은 무국적자들이다 (한국에서 태어나도 한국 국적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는데다, 자신을 핍박했던 조국의 대사관에 가기에는 위험하거나 두렵기 때문에 자국민으로도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이들은 서류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아이들이 된다. 교장과 논의해 재량껏 입학하는 방법밖에 없다고 한다. 아이들의 경우 이러한 교육의 문제뿐만 아니라 정체성의 문제도 많이 겪는다고 한다. 부모가 난민이더라도 타지에서 나고 자란 아이들은 난민으로서의 정체성이나 부모의 나라에 대한 정체성 또한 없기 때문이다.


이 날 강의는 육하원칙을 통해 난민의 상황을 잘 정리하고 또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 준 유익한 강의였다. 특히 무지에서 비롯된 불안이나 공포를 줄이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는 개인적인 관계 속에서도 나와는 다른 동료, 상사, 선후배, 가족 구성원 등을 마주할 때 불편함을 느끼기 마련인데, 우리나라처럼 외국인 또는 소수민족 비율이 낮은 나라에서는 나와 피부색과 문화, 가치관이 많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질감이 더더욱 클 것이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나는국민국가라는 것은 매우 근대적인 개념으로 그 경계가 영원 불변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21세기는 세계화의 시대인 동시에 기후변화, 내전, 각종 자연재해 등으로 점점 난민들이나 국제 이주민들이 많아지는 시대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에서는 자기 민족, 자기 국민의 이익만을 지키려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무엇보다도 국경의 한계를 넘어 서로 협력하고 돕는 자세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가끔, 어느 한 나라에 생각지도 못할 불행이 닥쳐 허우적댈 때마다, 전 세계가 함께 나서서 신속히 긴급 구호와 복원에 힘쓰는 것을 상상한다우리 세계의 여러 가지 문제들이 더 이상 "저 나라의 문제"가 아닌, "우리 지구의 문제"로 비춰지는 상상이다. 누구는 말도 안 되는 이상주의라고 할 수도 있지만, 언제나 변화는 말도 안 되는 것을 시도함으로써 생겨났다. 우리 곁에 난민이 살아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너무나도 당연한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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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 


날씨가 선선해지는 가을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추석 연휴 잘 보내셨나요?



지난 달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을 통해 미리 홍보했던 '넘나 쉬운 난민이야기.' 


4주간의 강의 프로그램을 드디어 여러분께 공개합니다 :D





'넘나 쉬운 난민 이야기'


난민에 대해 여러 뉴스로 떠들썩한 요즘이지만 사실 아직은 좀 낯설게 느껴지는 존재, 난민. 

하지만 자세히 보면 그들도 우리와 같은 보통 사람들이랍니다.

저희는 앞으로 4주간의 강의를 통해 난민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합니다. 

쉽고 재미있게, 우리의 이웃 난민에 대해 함께 알아보아요 :)


* 시간: 2018년 10월 11일, 18일, 25일, 11월 8일 (목) 저녁 7시
※ 11월 2일 목요일에는 한 차례 건너 뜁니다.
 



* 장소: 업사이드다운 강의실 (희년평화빌딩) 

충무로역에서 도보로 5분 거리입니다. (주소: 서울 중구 퇴계로 36가길 97 3층)



* 프로그램 구성:


1강) 난민은 누구일까요? by 이유민 (에코팜므)

→ 아직은 어렵고 낯선 존재인 '난민'에 대해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배워보는 시간  


2강) 시리아 난민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예멘 난민 이슈 by 압둘 와합 (헬프시리아 사무국장)

→ 시리아와 예멘, 중동의 두 나라가 대한민국에서 만나는 지점


3강) 난민, 우리의 용감한 이웃: 자원문제와 난민 by 박진숙 (에코팜므 대표)

→ 자원이 많아 슬픈 아프리카, 그리고 난민 이야기


4강) 난민에서 아티스트로 (Refugee to Artist) by 미야 (에코팜므)

→ 대한민국 내 난민인정자이자 에코팜므의 아티스트인 콩고 여성 미야의 실제 경험담



* 수강료: 모든 프로그램 참여시 40,000원, 개별강의 15,000원

※ 참가비를 보내주셔야 등록이 완료됩니다. (농협 351-0123-7790-53 에코팜므) 



많은 분들의 관심과 수강 신청 바랍니다.


그럼, 10월 11일 저녁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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